전구의 '플리커 프리': 뜻과 알아보는 방법

이 글에서는 '플리커 프리(Flicker-Free)가 무엇인지, 조명을 구입하기 전에 어떻게 알아보는지, 조명을 구입하고 나서는 어떻게 알아보는지 정리합니다.


수학적 엄밀함보다는, 직관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 것에 집중할 것입니다.


관련 글


1. 플리커 규제

2. 플리커 프리(?)

3. 구입 전에 알아보는 방법: CE 인증

4. 구입 후에 알아보는 방법: 스마트폰 카메라

5. EPREL

6. Pst LM과 SVM 맛만 보기

7. 마무리


1. 플리커 규제


플리커(Flicker)는 쉽게 말해 '빛의 깜빡임'입니다. 그냥 눈으로 봐도 쉽게 관찰 가능한 '가시 플리커'도 있고, 사람의 뇌로는 인식할 수 없지만 시신경에는 부담을 준다고 알려진 '비가시 플리커'도 있습니다. 플리커가 심하면 눈 건강에도 좋지 않지만, 어지러움이나 구토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당연히 규제가 있을 것 같지만, 플리커를 규제하는 나라가 많지는 않습니다.

- 유럽연합(EU) 27개국은 플리커 규제를 가장 강하게 하는 곳입니다. 2019년에 규정이 만들어졌고, 2021년부터 규제를 지키지 않은 조명의 EU 내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이후에 규제를 약간 더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2026년 작성일 기준 규제 수치는 Pst LM ≤ 1.0, SVM ≤ 0.4입니다.

-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일부 지역에서 규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퍼센트 플리커 수치로 규제하는데, EU의 규제보다는 통과가 쉽다고 합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 한국의 경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KC인증에는 플리커 규제가 없습니다. 다만 공공기관 납품 시에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을 요구하고, 그 인증에 플리커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U와 똑같은 항목(Pst LM, SVM)으로 규제하지만, Pst LM ≤ 1.0, SVM ≤ 0.9로 SVM 규제치가 EU보다 느슨합니다.


▶ 건강과 관련된 내용인데 규제하는 곳이 비교적 적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너무 심한 플리커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런 조명은 경쟁에서 밀려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조명이 깜빡거리면 누구라도 불량품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비가시 플리커'입니다. 즉 '뇌에서 인식은 할 수 없지만, 건강에는 영향을 미치는 플리커'가 규제의 핵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알기 어렵고, 그래서 연구 자체도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습니다.

- 과거의 방식인 백열등이나 형광등은 LED보다 플리커가 적었습니다. 반응이 느린 방식을 이용한다는 점이, 역으로 플리커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 각국의 산업적 고려도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전력 기반 시설의 효율을 위해 조명의 역률(Power Factor)을 이미 규제하고 있는데, 역률을 규제하면서 플리커까지 억제하려면 회로에 비용을 더 투입해야 합니다. 즉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 오르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릅니다. 규제 움직임이 생기면, 기업 집단 입장에서는 규제를 막기 위해 로비를 할 유인도 생깁니다.


하지만 플리커가 나쁘다는 인식은 굉장히 많이 퍼져 있습니다. 판매 페이지에 '플리커 프리'라고 쓰여 있는 조명을 선호하는 분들도 많고, 기업도 이를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이라면 물론 플리커 프리 전구를 선호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속칭 '플리커 프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알아보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플리커 프리(?)


'플리커 프리(Flicker-Free)'는 쉽게 말해 플리커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조명에서 엄밀하게 플리커가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교류 전류를 직류로 변환하는 부품을 사용하더라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엄밀하게는 '로우 플리커 (Low-Flicker)'라고 불려야 하겠지만, 광고 용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강 EU 규제를 만족하는 정도의 제품들이 '플리커 프리'로 홍보되고 있습니다.

- 지금은 생산과 수입이 금지된 백열등은, 필라멘트를 전기로 가열하여 빛을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가열된 필라멘트는 전류가 0.01초 끊겼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해도 금방 식지는 않기 때문에, 플리커가 굉장히 적었습니다.

- 생산과 수입을 금지할 예정인 형광등도, 형광물질이 자외선에 반응하여 빛을 내는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전류가 0.01초 끊겼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해도 빛이 금방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 하지만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은 전류가 0.01초 끊겼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하면 빛도 굉장히 빠르게 깜빡입니다. 백열등이나 형광등을 이용해보셨던 분이라면, 벽 스위치를 눌렀을 때 LED 조명이 얼마나 빠르게 켜지고 꺼지는지 차이를 아실 것입니다.


백열등이나 형광등도 플리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플리커에 관심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LED 조명의 생산 비용이 낮아지면서 사용 빈도가 늘어난 뒤부터는, 사람들이 플리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광고 문구 규제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EU 규제 수치를 만족하는 제품이 '플리커 프리'로 홍보되는 경우가 많고, 이보다 느슨한 공공기관 납품용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 기준치만 만족해도 '플리커 프리'로 홍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EU 규체 수치를 만족했지만 플리커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을 고려하면, 홍보 문구만 보고 플리커의 정도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3. 구입 전에 알아보는 방법: CE인증


한국에서 판매되는 조명은 법적으로 한국의 안전 규제 KC인증만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KC인증에는 플리커 관련 항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한국 판매 페이지에 플리커 관련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판매자가 '플리커 프리'라고 적은 것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플리커 프리'라는 홍보 문구 자체가 법적 규제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마다 기준치를 다르게 두고 홍보 문구를 붙입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방법이 EU의 안전 규제 CE인증 취득 여부입니다. CE인증을 받으려면 Pst LM과 SVM 수치도 규제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플리커 프리'에 가까운 전구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EU의 안전 인증, CE 로고입니다.


그런데 한국 판매 페이지에 CE 인증 획득 여부를 적어 놓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건 리뷰의 사진을 확인해야 합니다. 아래는 제가 가지고 있는 전구의 예시 사진입니다.


레드벤스 오스람 밸류 클래식 A 전구. CE 인증 마크가 붙어 있습니다.

▲ 레드밴스의 오스람 LED Value Classic A 78 10.5W 전구입니다. '오스람 플리커 프리 전구'라고 검색하면 흔히 나오는 제품입니다. 포장 아래쪽에 CE 인증 로고가 있습니다.


나노리프 에센셜 매터 스레드 전구. 역시 CE 인증 마크가 붙어 있습니다.

▲ 나노리프 에센셜 매터 스레드 스마트 전구입니다. 제품 아래에 CE 인증 로고가 있습니다.


제품 포장이나 본체 어딘가에 CE 로고가 있는 전구는, CE 인증 과정에서 플리커 규제도 만족한 것입니다.


다만 로고만 보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알리 익스프레스 같은 곳에서는 제조사도 밝히지 않는 판매자가 판매 페이지에 CE 인증 로고를 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속칭 짭이 판치는 곳이기 때문에, 생산자나 판매자의 신뢰도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 넘게 비용이 들 수 있는 CE 인증을 받았다면서, 제조사를 밝히지 않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4. 구입 후에 알아보는 방법: 스마트폰 카메라


간단한 방법으로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카메라입니다.


흔히 초고속(슬로우 모션) 촬영을 많이 이용합니다만, 간단하게 셔터 스피드만 조절해도 됩니다. 파일을 열어 볼 필요도 없이, 화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앱마다 다르기는 한데, '프로 모드' 비슷한 이름이 붙은 곳으로 들어가면 1/200, 1/500 이런 식으로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셔터 스피드(=빛을 받는 시간)를 0.005초, 0.002초로 조절한다는 의미입니다. 밝기가 너무 밝거나 어둡다면 ISO 값도 약간씩 조절하면 됩니다.


플리커가 있다면 아래와 같이 줄무늬가 보입니다.

- 참고: 안드로이드 포토샵 라이트룸 앱에서 셔터 스피드 1/2000초, ISO 100, WB 일광, 초점 0%로 고정하고 촬영했습니다. DNG 포맷으로 저장하고 크롭 후 그대로 jpg로 편집했습니다. 후보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엄밀하지는 않아도, 일관성은 챙겼다고 봅니다.

이케아 트로드프리 E14 806 lm 전구. 파란색에서 플리커 현상이 보입니다.

▲ 단종 수순을 밟고 있는 이케아 트로드프리 스마트 전구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괜찮은데, 파란색에서 줄무늬가 보입니다. 전구를 어둡게 설정했을 때도 줄무늬가 보입니다.

- 셔터 스피드 1/2000에서 줄무늬가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플리커가 심하다고 볼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전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플리커가 많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이케아 트로드프리 E26 1055 lm 전구. 플리커 현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 이케아 카이플랏스 스마트 전구입니다. 플리커가 보이지 않습니다.


LED 소자의 깜빡임이 셔터 스피드보다 빠른지 느린지 알아보는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셔터 스피드를 빠르게 할수록 줄무늬가 더 보이고, 셔터 스피드를 느리게 할수록 줄무늬가 덜 보입니다. 줄무늬가 보일 때도,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차이가 클수록 플리커가 심한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엄밀하지는 않지만,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집안 조명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5. EPREL


EU에서 유통되는 제품의 인증을 볼 수 있는 EPREL이라는 사이트(링크)가 있습니다. EU 에너지 등급 등록 시스템(European Product Registry for Energy Labelling)의 줄임말입니다.


광원(Light sources)의 경우, 플리커 지수(Flicker metric)가 Pst LM, 스트로브스코픽 효과 지수(Stroboscopic effect metric)가 SVM입니다. EU의 규제치는 Pst LM ≤ 1.0, SVM ≤ 0.4입니다.


6. Pst LM과 SVM 맛만 보기


EU의 CE 인증이나, 한국의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에서 활용하는 Pst LM과 SVM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맛만 보겠습니다. 수학적으로 엄밀한 내용은 저도 잘 모릅니다.


쉽게 요약하자면, 사람이 느끼기 쉬울수록 커지는 값들입니다.


▶ Pst LM (단기 플리커 지수, Short Term Light flicker Meter, 인증 페이지 Flicker metric)

주로 사람이 쉽게 느낄 수 있는 80Hz 이하 주파수 대역의 플리커 심각성을 평가합니다.

Pst LM의 계산식입니다. 빛의 파형을 인간의 시각-뇌 인지 필터에 통과시켜 '순시 플리커 감각 레벨'을 구한 뒤, 10분간의 누적 확률 분포를 통해 산출한다고 합니다.

- Px는 측정 시간 동안 플리커 감각 레벨이 상위 x%에 해당하는 백분위수 값입니다. 예를 들어 P10은 10%의 시간 동안 초과한 플리커 심각도입니다.

- 각 항목의 가중치는, 아주 짧은 순간 튀는 플리커(P0.1)부터 지속적인 플리커(P50)까지, 인체 자극 강도를 반영하여 정해진 통계적 가중치입니다.


대강 저주파수 성분이 늘면, 진폭이 커지면 Pst LM 값이 커집니다.

- Pst LM이 1이면, 평균적인 관찰자가 50%의 확률로 플리커를 인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값이 1이하여도 플리커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딱 1이면 평균적인 관찰자도 절반은 인지하고, 민감한 관찰자라면 인지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 SVM (스트로보스코픽 효과 시인성, Stroboscopic Visibility Measure, 인증 페이지 Stroboscopic effect metric)

- 주로 사람이 쉽게 느끼지 못하는 80Hz 초과 주파수 대역의 플리커 심각성을 평가합니다.

SVM 계산식입니다. '진폭'과 '주파수별 시인성 임계값'에 따라 결정됩니다.

SVM의 계산식입니다.

- Ci는 상대 진폭입니다. 조명 밝기 신호를 푸리에 변환(FFT)했을 때 나오는 i번째 주파수 성분의 진폭입니다.

- Ti는 주파수별 시인성 임계값(Threshold)입니다. i번째 주파수에서 인간이 깜빡임을 인지할 수 있는 최소 임계값입니다. 주파수 대역에 따라 실험적으로 정한 상수입니다.

- n: 2000Hz 이하의 유효한 주파수 성분의 총 개수입니다.


대강 주파수가 낮아지면, 진폭이 커지면 SVM 값이 커집니다

- SVM이 1이면, 평균적인 관찰자가 50%의 확률로 플리커를 인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과거의 규제치는 0.9 이하였는데, 2024년에 0.4 이하로 강화되었습니다. 0.4라면 평균적인 관찰자가 5% 미만의 확률로 플리커를 인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상위 25%의 민감한 관찰자의 인지 확률도 약 10%가 된다고 합니다.


→ EU의 규제치인 Pst LM ≤ 1.0, SVM ≤ 0.4은, 인지가 어려운 고주파수 플리커에 대해 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한 것입니다. 인지가 쉬운 저주파수 플리커는 말 그대로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선택에 맡긴 것입니다.


7. 마무리


한국에서만 유통되는 전구는 KC 인증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CE 인증을 받은 플리커 프리 전구를 찾다 보면 대개 글로벌 기업의 전구를 구입하게 됩니다. 고효율기자재 인증은 공공기관 납품용으로 받고, 일반 소비자 판매용으로는 활용을 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찾기도 상당히 번거로운데, 한국에도 유사 규제가 도입되어 전구를 대충 구입해도 되는 때가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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